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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분쟁과 기아] ③2026 세계 인도주의의 날, 분쟁과 기아 속 기억해야 할 사람들

2026-08-19

먹을 것이 없어 심하게 굶주리는 상태를 뜻하는 ‘기아’. 오늘도 이 치명적인 굶주림은 세계 곳곳에서 많은 이들의 생명을 위협합니다. 기아가 발생하는 현장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눈에 띄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날 심각한 식량위기가 발생하는 많은 지역이 ‘분쟁’의 영향 아래 있다는 사실입니다. ‘분쟁과 기아’ 시리즈는 이 무거운 두 단어 사이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시리즈를 통해 분쟁이 어떻게 사람들의 식탁을 비우고, 생계를 무너뜨리며, 결국 기아로 이어지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컨선월드와이드가 기억하는 사람들

8월 19일은 세계 인도주의의 날입니다. 위기 속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일하는 인도주의 활동가들을 기억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지원이 안전하게 닿을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되새기는 날입니다. 


매년 이 시기가 되면 컨선월드와이드가 기억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1993년 소말리아 기근 대응 현장에서 세상을 떠난 소중한 동료, 밸러리 플레이스 님입니다. 간호사였던 그녀는 모가디슈 급식센터를 관리하며 수많은 아이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일했습니다. 그러나 1993년 2월 22일, 인도주의 호송대와 함께 차로 이동하던 중 무장세력의 공격을 받았고,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아이들을 뒤로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스물셋, 세상을 떠나기엔 너무나 이른 나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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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 치료급식센터(TFC)에서 아이에게 치료식을 먹이고 있는 밸러리 플레이스 님


밸러리 님의 이야기는 오래전에 일어난 한 사건에 머물지 않습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의 분쟁과 기아 현장에서 인도주의 활동가들은 위험을 마주합니다. 분쟁과 기아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먼저 굶주림에 놓인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그 곁에는 우리가 쉽게 놓치는 또 다른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로 인도주의 활동가들입니다. 세계 인도주의의 날, 인도주의 활동가들의 헌신을 기억하며 분쟁과 기아의 현장으로 시선을 옮겨보려 합니다. 

 



두 개의 통계가 말하는 것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주목해야 할 두 가지 통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 ‘기근’입니다. 통합식량안보단계분류(IPC, Integrated Food Security Phase Classification)는 한 지역의 식량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1단계부터 5단계까지 나누어 평가하는 국제적 분석 체계입니다. 이 가운데 가장 심각한 5단계는 ‘재앙/기근’ 단계에 해당합니다. 기근은 극심한 식량 부족과 급성 영양실조, 사망률 증가가 함께 확인되는 가장 심각한 식량위기 상황을 뜻합니다.


2025년, 가자지구와 수단에서 기근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러한 분류가 시작된 이후 두 개의 별도 위기 맥락에서 기근이 확인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수단에서는 2024년 8월 북다르푸르 잠잠 캠프에서 기근이 먼저 확인되었고, 가자지구에서는 2025년 8월 가자 주에서 기근이 확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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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의 격화로 가자지구의 인도주의 위기는 재앙적인 수준으로 악화되었습니다.

 

두 번째, ‘인도주의 활동가들의 사망자 수’입니다. 구호 활동가 보안 데이터베이스 (AWSD, Aid Worker Security Database)는 전 세계 인도주의 활동가들이 겪는 주요 보안 사건을 기록하는 국제 데이터베이스입니다. 사망, 부상, 납치, 구금 등 인도주의 활동가 대상 중대 사건을 집계해, 현장 활동가들이 어떤 위험 속에서 일하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인도주의 활동가 350명이 사망했습니다. 이는 2024년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수치입니다. 특히 가자지구와 수단에서 사망자가 집중되었습니다. 가자지구에서는 186명, 수단에서는 71명의 인도주의 활동가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두 통계는 서로 다른 비극을 말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하나는 굶주림에 관한 통계이고, 다른 하나는 도움을 전하던 사람들의 희생에 관한 통계입니다. 그러나 그 비극이 반복해서 가리키는 현장은 같습니다. 가자지구와 수단입니다. 기근이 확인된 가자지구와 수단이, 동시에 인도주의 활동가 사망이 가장 많이 집중된 지역이었다는 것입니다.

 



분쟁의 그림자

왜 가장 굶주린 곳이, 동시에 도움을 전하는 사람들에게도 가장 위험한 곳이 되었을까요? 단순히 한 가지 이유를 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두 지역의 상황을 아울러 설명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습니다. 바로 ‘분쟁’입니다. 


가자지구의 상황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습니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이어진 분쟁은 대규모 군사작전과 반복되는 강제이주, 인도주의 접근 제한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생명뿐 아니라 농지와 시장, 도로와 식수 시설, 보건 서비스가 함께 무너졌고, 식량이 사람들에게 도착하는 길도 크게 흔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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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의 상황은 가자지구만큼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수단 역시 내전의 한가운데에서 깊은 인도주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2023년 4월 수단군과 신속지원군 사이의 무력 충돌이 본격화된 이후 분쟁은 장기화되었고, 다르푸르와 코르도판 지역을 중심으로 교전과 공습, 드론 공격, 포위 전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농지와 시장, 도로와 보급로, 보건·식수 시설이 무너지는 사이 수백만 명이 집을 떠났고, 많은 사람들은 식량과 물, 보건 서비스를 얻기 어려운 지역에 고립되었습니다. 

 



분쟁이 만들어내는 악순환의 고리

앞선 ‘분쟁과 기아’ 시리즈에서 살펴보았듯, 분쟁은 단순히 식량을 부족하게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농지와 시장, 도로와 보건·식수 시설을 무너뜨리고, 사람들을 집과 생계에서 밀어냅니다. 한 사람과 한 사회가 스스로 살아가고 회복할 수 있는 힘을 약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분쟁으로 인한 기아 상황에서는 인도적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식량 배급, 영양실조 치료, 식수와 보건 서비스가 사람들의 생명을 지키는 마지막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위기가 깊어질수록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고, 더 많은 인도주의 활동가들이 현장으로 향해야 합니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분쟁과 기아의 잔인한 역설이 있습니다. 도움이 가장 절실한 곳일수록, 그 도움을 전하러 가는 길은 더 위험해진다는 것입니다.


1) 분쟁은 먼저 식량이 닿는 길을 끊습니다. 농지는 파괴되거나 버려지고, 시장과 도로는 멈추며, 사람들은 일자리와 소득을 잃습니다. 식량이 있어도 그것을 살 수 없고, 지원이 준비되어 있어도 사람들에게 닿지 못하면 굶주림은 깊어집니다. 


2) 분쟁은 도움을 전하는 길도 막습니다. 구호 차량이 이동해야 하는 도로는 검문과 공격의 위험에 놓이고, 병원과 물류시설, 배급 장소도 안전을 보장받지 못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곳일수록 접근은 어려워지고, 인도주의 활동가들은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3) 위기가 깊어질수록 현장에는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합니다. 더 많은 식량 배급이 필요하고, 더 많은 영양실조 아동이 치료를 기다리며, 더 많은 사람들이 깨끗한 물과 보건 서비스를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활동가들이 들어가야 하는 지역은 더 불안정하고, 이동 경로는 더 위험해집니다. 지원의 필요가 커질수록, 지원을 전하는 사람들의 위험도 함께 커지는 것입니다.


4) 위험 때문에 활동가들이 접근하지 못하면 기아는 다시 악화됩니다. 식량 배급은 지연되고, 영양실조 치료는 멈추며, 물과 보건 서비스도 끊길 수 있습니다. 도움을 전하는 길이 막힐 때 가장 먼저 위험해지는 사람들은 이미 굶주림 속에 놓인 사람들입니다.


분쟁은 기아를 만들고, 기아는 더 많은 지원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분쟁은 그 지원이 닿는 길마저 위험하게 만들고, 그 길이 막힐수록 기아는 더 깊어집니다.

 



세계 인도주의의 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누군가 현장으로 향해야 합니다. 굶주림 속에 놓인 사람들에게 식량을 전하고, 영양실조 아동을 치료하며, 깨끗한 물과 보건 서비스를 연결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길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현장으로 향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닙니다.


세계 인도주의의 날, 우리는 인도주의 현장에 선 사람들의 선택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오랜 시간 인도주의 현장에서 일해 온 현재 컨선의 CEO 도미닉 크라울리는 한국 사무소 방문 당시 “위험을 알면서도 어떻게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안전만을 생각했다면 이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그 말은 위험을 가볍게 여긴다는 뜻이 아니라, 위기 속 사람들 곁에 서는 일이 얼마나 큰 책임과 무게를 가진 일인지를 보여주는 대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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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선월드와이드 긴급 기동팀이 지원하는 수단 중부 다르푸르에 위치한 엄 샬라야(Um Shalaya) 보건소에 있는 스태프들의 모습입니다. 컨선월드와이드는 시설에 인력을 배치할 기동팀을 파견하고 의약품 및 영양 물자를 제공함으로써, 이곳을 비롯한 서부 및 중부 다르푸르 전역의 보건소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각 팀은 간호사, 의사, 조산사, 약사, 영양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엄 샬라야 보건소는 인도주의적 위기로 인해 거의 6개월 동안 완전히 폐쇄된 상태였으며, 컨선 팀이 도착하기 전까지 수주 간 필수 의료 물품이 전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기아와 극빈을 끝냅니다”라는 우리의 사명은 말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분쟁과 기아의 현장으로 나아가는 일이고, 때로는 위험을 마주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컨선월드와이드는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안전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보안 상황을 점검하고, 지역별 위험을 분석하며, 필요한 교육과 지침을 마련합니다. 상황이 악화될 경우에는 활동을 조정하거나 중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쟁과 기아의 현장에서 모든 위험을 한 단체의 준비만으로 막을 수는 없습니다. 인도주의 활동가가 안전하게 이동하고 지원을 전할 수 있으려면, 분쟁 당사자와 국제사회가 지켜야 할 책임이 함께 작동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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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인도주의의 날입니다. 우리는 분쟁과 기아의 현장에서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들뿐 아니라 그 곁으로 향하는 우리의 동료들을 함께 기억합니다. 그 기억과 관심은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기아를 끝내기 위해서는 식량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식량이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는 길,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의 생명도 함께 지켜져야 합니다. 그 여정에 용기 있게 발걸음을 내딛는 이들의 곁을 연대와 지지로 지켜주세요.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기아와 극빈을 끝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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