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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컨선뉴스

에티오피아의 말로 다 할 수 없는 피난민 이야기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서양 나라들이 국제적인 피난민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시도한 수 많은 사례들을 보고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난민들을 돌보는 데 있어 막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나라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에티오피아는 분쟁으로 피난 온 남 수단 사람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많은 나라들 중 하나입니다.

  • 냐킴 위유알(Nyakim Wiyual), 냐추올 루오트(Nyachuol Ruot), 냐말 뎅(Nyamal Deng)이 에티오피아 감벨라(Gambella)에 있는 푸드니도(Pugnido) 캠프 1의 컨선 영양 센터에서 식량 배급을 기다리고 있다.사진: 제니퍼 놀란/컨선 월드와이드

38만 난민의 거처


에티오피아 서부의 감벨라(Gambella) 지역에는 남 수단에서 지속되는 내전을 피해 피난 온 거의 40만 명의 피난민이 모여 있으며, 이는 그 지역 인구의 거의 2배에 가까운 인원입니다. 이 지역에 있는 7개의 난민 캠프는 거의 수용 인원이 꽉 차 있지만, 에티오피아 정부는 여전히 국경을 건너오는 피난민들을 받고 있으며, 오히려 새로운 피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해 인접 지역에 새로운 난민 캠프를 열고 있습니다.

컨선이 지원하는 난민 캠프


푸그니도(Pugnido) 캠프 1은 감벨라에서 제일 오래된 캠프입니다. 수단 내전으로 사람들이 피난처를 찾고 있던 1993년에 처음 생겼지요. 4년 전 새로 독립한 남 수단에서 전쟁이 발발한 이후, 난민 캠프는 다시 한 번 수 천명의 난민들에게 문을 열어야 했었습니다.

난민 캠프는 에티오피아 정부 산하의 난민과 귀환민 담당청(ARRA)과 UN 난민 기구(UNHCR)에 의해 조직되었습니다. 컨선 월드와이드는 캠프 내에서 인도주의적 구호 활동을 제공하는 NGO 중의 하나입니다. 저는 푸그니도 캠프 1에 가서 컨선 팀의 활동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마을 같은 난민 캠프


감벨라 마을에서 푸그니도 캠프까지 가는 길은 길고도 험난했지만, 또한 아름답기도 했습니다. 그곳에 갔을 때는 우기로, 주변은 온통 초록으로 가득했지요. 목적지에 거의 다다르면서 주변 환경이 달라지는 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캠프에 들어왔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난민 캠프란 텐트가 조밀하게 붙어 있고 사람들이 몰려있을 거라는 이미지가 있었거든요. 그러나 20년 넘게 있었던 이 캠프가 시간, 공간 및 계획을 가지고 그것보다 더 전체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을 고려하지 않았더군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광장도 있었고,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작은 주택지에 각 가정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주택지 안에는 텐트 대신 토컬(toucal)이라는, 초가 지붕의 이 지역의 전통 가옥이 있었습니다. 이 지역에 11개의 유치원, 4개의 초등학교, 1개의 중학교와 2개의 직업 교육 센터가 있었습니다. 작은 마을 중심에는 몇몇 진취적인 상인들이 가게들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매우 인상적인 구조였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이 난민 캠프의 생활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 순간, 바로 이 곳에 6만 명 넘게 살고 있으며, 절대 집과는 비교될 수 없다는 걸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최소 전쟁 전에 지내던 그들의 진짜 집과는 말이죠.

  • 에티오피아 감벨라에 있는 푸그니도 캠프 1의 주택지사진: 제니퍼 놀런/컨선 월드와이드

생존의 정신력


컨선의 영양 센터에서 우리는 놀라운 두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냐코운(Nyakoun)과 냐웨치(Nyawech)로 둘 다 난민 캠프에서 홀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지요. 이 두 어머니의 이야기는 놀랍게도 비슷했습니다. 이 둘은 남 수단에서 전쟁이 시작되기 전까지 가족과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전쟁으로 가까운 가족을 잃고 에티오피아에서 안전을 찾을 때까지 멀고도 험난한 여정을 겪어야 했습니다. 또한 이 고난의 과정을 거친 후 지금은 아이들의 굶주린 모습을 보고 있어야 하는 무서운 현실에 부딪혀,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분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절망에 빠져있지만, 저는 그들이 가진 조용한 힘에 놀라고 말았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하루하루를 견뎌내며, 그들이 직면한 모든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두 살아남았습니다.

꿈은 잠시 접어두고


생존과 결단에 대한 이야기는 캠프에 많이 있었지만, 냐쿠마(Nyakuma)와 크리스마스(Christmas) 이야기보다 더 놀라운 이야기는 많지 않습니다.

냐쿠마는 23살입니다. 남수단에서 남편은 일을 했고 그녀는 학교에 다녔지요. 지금은 둘 다 난민이며 둘 다 돈을 벌 기회가 없습니다. 그들은 키워야 할 어린 아기가 있습니다.
“남수단에 가면 돈도 있고 많은 것이 있지만, 지금은 그냥 난민일 뿐이에요.”
냐쿠마는 간호사가 되고 싶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고국에 돌아갈 때까지 꿈을 접고 있는 상태입니다.

크리스마스는 20살입니다. 그녀는 전쟁 때문에 학교를 못 다니게 되었지만, 다행히도 감벨라에서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배우고 싶어요. 의사가 되고 싶기 때문에 더 많이 배워야 하거든요,”라고 말합니다.

냐쿠마와 크리스마스는 둘 다 2014년부터 난민 캠프에서 살고 있습니다. 현명하고 꿈이 있는, 미래에 간호사와 의사가 될 지도 모르는 젊은 여성들은 지금까지 3년 넘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 있으며, 늘 집에 돌아갈 기회를 기다리면서 다시 본인들의 삶으로 돌아가 자신들의 꿈을 이루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 냐쿠마, 무치와 크리스마스는 모두 남 수단에서 피난을 와서 에티오피아 감벨라에서 피난처를 찾았다.사진: 클레어 어헌/컨선 월드와이드

무치의 이야기


몇몇 사람들에겐, 이 놀라운 이야기가 너무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첫 날 오후에 무치 고니(Much Gony)를 만났습니다. 영어를 할 수 있어서 번역을 도와주었지요. 무치를 맨 처음 봤을 때 멋진 헤어 스타일이 인상적이더군요. 칭찬을 하자 그도 바로 저를 칭찬했습니다. 무치는 따뜻하고 친절해서 사람들이 그를 편하게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무치와 함께 2일을 보낸 후에야, 무치가 이번이 첫 난민 생활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10살 때에도 그의 생활은 한 번 뒤집힌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엔 수단 내전으로 집에서 도망쳐 나와야 했지요. 그때도 지금처럼 에티오피아로 도망을 와 난민 캠프를 찾았다고 합니다.

감사하게도 그는 6년 간 집이라고 불렀던 난민 캠프에서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었습니다. 16살 때 난민 캠프를 떠났는데, 다시 감벨라로 대학을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병으로 학교를 쉬게 되었고, 결국 1년 뒤에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는 수단 독립 투표를 위해 수단으로 돌아왔고, 결국 남 수단이 새로운 독립 국가가 되면서 마침내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한 덕에 그는 아동 보호의 사례 직원으로 국제 NGO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그는 그 일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전쟁 동안 헤어졌던 가족과 아이들을 다시 만나게 해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주 좋은 직업이었어요.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도와주었거든요.”

반복되는 역사


무치는 부인 냐호스(Nyahoth)와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며 행복했던 시절에 대해서도 즐겁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후에 어떻게 될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야기는 슬픔으로 물들었습니다. 2013년 12월, 남 수단에서 내전이 발발했고, 다시 무치의 삶은 어지러워졌습니다. 교육받은 사람들은 특히 더 타겟이 되기 때문에 그는 거의 즉각 나라를 버리고 떠나야 했지요. 그는 예전에 피난 왔던 감벨라로 다시 오게 되었습니다.

이제 여기 온 지도 4년이 되었습니다. 무치와 아내가 기다렸던 아기 이사야(Isaiah)는 이제 3살이되었지요. 무치는 아내와 어린 아들을 먹여 살리기 어렵고 남 수단으로 돌아가기 어려워 점점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돌아가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지만 난민 캠프에서 지내는 피난민들에게 수입이 생길 기회는 좀처럼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 곳에서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가 집에 돌아갈 여비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을 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돌아가는 길에 그에게 위험한 일이 생길까 걱정스러웠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동시에 그가 느낄 좌절감, 그가 꿈을 이루기 위한 모든 노력이 뿌리 뽑히고, 그의 가족들의 고생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매우 가슴이 아픈 일이기도 했습니다.

  • 무치 고니(Much Gony)는 두 번째 전쟁 난민 생활을 하고 있다. 두 번 모두 에티오피아에서 난민 생활을 하고 있다.사진 : 제니퍼 놀란/컨선 월드와이드

난민 캠프의 희망


아마 무치에 대해 가장 놀라운 것은 많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이고 유머를 잃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는 다음 이동 계획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절대로 희망을 포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희망은 우리가 들은 모든 이야기에서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제가 만난 피난민들이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지 않았다면 하루하루 어떻게 살아갈 지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지요. 희망을 가지려면 필수적으로 에티오피아에서 제공한 안전한 피난처와, 컨선 및 다른 기관들이 제공하는 지원이 필요합니다. 하나라도 부족하다면 그들은 갈 곳도 없고 아무것도 없게 됩니다.

국제적인 난민 위기가 지속되는 동안, 에티오피아와 같은 나라들은 자신들의 어려움과 부족한 자원에도 불구하고 솔선수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필요한 것들을 지원함으로써 한 부분을 담당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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